Yuval Noah Harari
우리가 진정 호모 사피엔스인가?
by modern promenader
유발 하라리에 대하여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1976– )는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이자 사상가로, 인류의 진화·권력·지식을 빅 히스토리로 재해석하며 대중과 학계를 동시에 흔든 인물이다.
그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을 ‘허구를 믿고 협력하는 동물’로 규정하며, 신화·국가·자본·인권과 같은 집단적 상상력이 어떻게 문명을 가능하게 했는지 추적했다. 이어 『호모 데우스』에서는 생명공학과 알고리즘이 인간의 존재 조건을 재구성하는 미래 시나리오를 제시했고,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는 기술·자본·정치의 변화를 읽어내며 새로운 교양의 형태를 제안했다.
들어가며…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우리 시대의 근본적인 전환을 지적한다. “우리는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있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알고리즘에 시간을 맡기고, 감정을 자극당하며, 선택을 위임한다.
문제는 이것이 외부의 강압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쉽게 권력을 넘겨주며, 매번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가? 망각과 환상, 그리고 자기파괴적 충동이 호모 사피엔스를 따라다니는 그림자라면, 과연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권력의 이동
20세기의 권력자는 편집자였다. 신문 1면에 어떤 기사를 실을지가 곧 사회적 사고의 흐름을 좌우했다. 무솔리니와 레닌이 언론인에서 독재자로 성장한 것도 그 힘의 연장선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힘은 사라졌다. 이름 있는 편집자가 아니라 익명의 알고리즘이 우리의 피드를 편집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편집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치 독일이 사이코패스 몇 명의 결과물이 아니라, 대규모 협력과 자발적 동의로 형성된 것처럼, 우리는 다시 익명의 힘에 사고를 맡기며 스스로 권력을 위임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파괴는 인간성의 문제인가
민주주의는 다수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대화의 장이다. 하지만 하라리에 의하면, 지금의 민주주의는 대화 대신 분노와 외침만이 오가는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 알고리즘은 사람들이 오래 머물도록 증오와 음모론을 증폭시킨다. 사람들은 설득하기보다 공격하고, 이해하기보다 단절한다.
그런데 이 역시 낯선 광경이 아니다. 인류는 이미 여러 차례, 진실보다 집단적 망상과 단순한 신화를 선택하며 파국을 향해 걸어갔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단순한 기술적 부작용이 아니라, 망각을 반복하는 인간성의 문제다.
AI 신뢰라는 도박
하라리가 만난 AI 기업가들은 말했다. “인간은 믿을 수 없으니, AI를 믿겠다.” 그러나 그는 반문한다. 거짓말할 수 있는 존재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AI는 이미 스스로 거짓을 택하고, 인간의 공감을 이용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불신과 자기모순이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해 결국 이해할 수 없는 기계에게 운명을 맡기는 것, 이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담보로 한 도박이다.
무기의 변신
원자폭탄은 인간이 버튼을 눌러야 폭발했다. 그러나 AI 무기는 다르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발사할 수 있는 무기가 이미 전장에 등장하고 있다. 하라리는 이 차이를 결정적이라고 강조한다. 기존 기술은 인간의 도구였지만, AI는 스스로 판단하는 ‘행위자(agent)’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기계의 자율성이 아니다. 역사는 늘 인간이 만든 무기가 인간을 압도하는 순간을 반복해왔다. AI 역시,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권력을 위임한 결과물이다.
진실 vs 정보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지만, 하라리는 단호하게 말한다. “정보는 곧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비용이 들고, 복잡하며, 불편하다. 반대로 허위는 싸고, 단순하며, 듣기 좋다.
알고리즘은 ‘참’이 아니라 ‘머물게 하는 것’을 선택한다. 결국 우리는 진실을 외면하고 환상을 택한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가 늘 스토리와 환상 속에서 길을 잃어온 역사적 습관이다.
인간은 지혜로워질 수 있는가?
“앞으로 어떤 직업이 남을지 아무도 모른다.” 코딩을 배우라는 조언조차 곧 무력해질 수 있다. 10년 뒤에는 AI가 더 뛰어난 코더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유연한 정신이라 말한다. 다시 배우고, 스스로를 재구성하며, 정서적·육체적 경험을 포괄하는 넓은 인간성.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인간은 자기파괴적 경향을 배우고 극복할 수 있는가? 지식은 늘어났지만, 지혜에는 도달하지 못한 채 반복된 파국으로 향해온 역사가 이를 의심케 한다.
시간의 문제
AI는 멈추지 않는다. 밤도, 휴일도, 쉼도 필요 없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우리는 숙성과 멈춤, 느린 리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하라리는 묻는다.
“인간이 적응할 시간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알고리즘의 속도에 짓눌려 붕괴할 것이다.”
사실 역사는 늘 같은 질문을 던져왔다. 우리는 스스로 만든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가, 아니면 그 속도에 파괴될 것인가?
마치며, 기술은 운명이 아니다
같은 기술도 권력 경쟁 속에선 악마가 되고, 진실 추구 속에선 동반자가 된다. 결국 차이를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다. 망각과 환상에 빠져 권력을 내어주는가, 아니면 지혜를 선택하는가. 이 물음 끝에서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진정 호모 사피엔스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지혜로 자기파괴의 운명을 넘어설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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