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데닛, 우리는 밈의 설계자인가?

어느 순간 친구들 모두가 똑같은 말투를 쓰고 있던 적은? 우리는 흔히 “생각은 내가 한다”고 믿지만, 오늘 소개할 선배 산책자 대니얼 데닛은 되묻는다.
“그 생각, 정말 당신이 고른 것인가?”

어느 순간 친구들 모두가 똑같은 말투를 쓰고 있던 적은? 우리는 흔히 “생각은 내가 한다”고 믿지만, 오늘 소개할 선배 산책자 대니얼 데닛은 되묻는다.
“그 생각, 정말 당신이 고른 것인가?”

실리콘밸리는 더 이상 미래의 중심이 아니다. 혁신의 언어는 광고·중독·속도 경쟁에 점령되었고, 기술은 공공선에서 멀어졌다. 이는 단순한 산업의 실패가 아니라 기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기준이 사라진 문명적 공백이다.

거대한 혁명보다 사소한 선택이 더 많은 것을 바꾸는 시대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One Battle After Another는 세계를 뒤흔드는 영웅담 대신, 조용한 일상 속에서 계속되는 개인의 ‘작은 전투들’을 꺼내 보인다.

매일 수많은 ‘이야기’가 흘러간다. 플랫폼마다 ‘스토리’가 넘치지만, 정작 우리는 이야기하는 법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현대인’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 단어의 안쪽에는 언제나 ‘근대’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다. 우리는 여전히 근대가 남겨준 언어, 가치, 구분법으로 세계를 읽고 있다. 이성, 과학, 진보, 객관성—이것들은 한때 인류가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기 위해 세운 개념이었지만, 이제는 세계를 가두는 틀이 되었다.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우리 시대의 근본적인 전환을 지적한다. “우리는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있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알고리즘에 시간을 맡기고, 감정을 자극당하며, 선택을 위임한다.

전후 파리의 밤은 언제나 담배 연기와 토론으로 가득했다. 좁은 살롱에 모인 이들은 철학과 문학, 정치와 예술을 넘나들며 세계의 운명을 논했다. 그 한가운데에는 알베르 카뮈가 있었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식인은 개입하는 사람이다.”

토마스 핀천의 문장은 전쟁에 씌워진 모든 장막을 찢어버린다. 국가의 도덕, 자유의 수호, 정의로운 명분은 결국 부차적인 수사일 뿐이다. 그의 눈에 전쟁은 무엇보다도 자본의 장부 위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매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