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외주화, 결국 인간은 무너지는가

우리는 지금 GPT가 만들어준 문장을 받아 적고 인용하며 살아간다. 필요한 말은 검색하면 되고, 생각은 몇 초 안에 문장이 된다. 질문은 단축되고, 응답은 자동화된다. 그러나 문득 의심이 스친다. 과거라고 크게 달랐을까?

우리는 지금 GPT가 만들어준 문장을 받아 적고 인용하며 살아간다. 필요한 말은 검색하면 되고, 생각은 몇 초 안에 문장이 된다. 질문은 단축되고, 응답은 자동화된다. 그러나 문득 의심이 스친다. 과거라고 크게 달랐을까?

우리는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그 속에서 메시지를 찾아내려 한다. ‘이건 무엇을 말하나?’라는 질문이 감각보다 먼저 튀어나오고, 이해하려는 욕망이 느끼려는 감각을 덮어버린다.

매일 수많은 ‘이야기’가 흘러간다. 플랫폼마다 ‘스토리’가 넘치지만, 정작 우리는 이야기하는 법을 잃어가고 있다.

전후 파리의 밤은 언제나 담배 연기와 토론으로 가득했다. 좁은 살롱에 모인 이들은 철학과 문학, 정치와 예술을 넘나들며 세계의 운명을 논했다. 그 한가운데에는 알베르 카뮈가 있었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식인은 개입하는 사람이다.”

토마스 핀천의 문장은 전쟁에 씌워진 모든 장막을 찢어버린다. 국가의 도덕, 자유의 수호, 정의로운 명분은 결국 부차적인 수사일 뿐이다. 그의 눈에 전쟁은 무엇보다도 자본의 장부 위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매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