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 Paul Sartre
모두가 발언하는 시대, 지식인의 책무
by modern promenader
사르트르에 대하여
1905년 파리에서 태어난 장 폴 사르트르는, 사유와 행동을 결합하려 한 20세기 대표 지식인이었다.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전쟁 중에는 레지스탕스에 참여했다. 전후에는 『존재와 무』를 통해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선언했고, 『구토』와 『닫힌 방』으로 실존의 불안을 문학으로 번역했다.
그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비판하며 거리로 나섰고, 1964년 노벨문학상을 거부하며 “작가는 제도에 포섭될 수 없다”고 말했다. 철학자이자 행동가였던 그는, 사유를 멈추지 않는 인간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은 사람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식인은 개입하는 사람이다.”
지식인의 기원
사르트르는 지식인의 출발점을 권력에 대한 봉사에서 찾았다. 법과 제도를 정당화하고 지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동원된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그보다 복잡하다.
오늘날 많은 지식인들은 대학, 학문 공동체, 시민사회 속에서 태어난다. 지식인의 기원을 단순히 “권력의 하위 파트너”로만 규정하기엔 더 다층적인 맥락이 존재한다.
전문가와 지식인
전문가가 사실을 다룬다면, 지식인은 그 사실의 의미를 묻는다. 원자폭탄을 설계한 과학자와, 그것의 사용을 문제 삼은 철학자의 차이가 바로 그 지점이다. 그러나 이 구분은 언제나 불안하다.
지식인의 개입은 때로 전문성의 빈약한 외피에 불과한 발언으로 비칠 수 있다. 바로 그렇기에 오늘의 질문은 단순하다. “누가 말할 자격을 지니는가?”
지식인의 모순
대개 지식인은 특권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이를 외면하면 권력의 대변자에 불과하고, 직시하면 모순을 껴안은 채 싸워야 한다. 사르트르는 모순을 외면하는 사람을 “가짜 지식인”이라 불렀다. 그러나 특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모순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다.
보편과 특수
사르트르는 “보편은 없다, 오직 지금 여기의 특수만이 있다”고 했다. 따라서 진정한 지식인은 추상적 원칙보다 눈앞의 억압과 부정의에 응답해야 한다. 하지만 지나친 특수성의 강조는 위험하다.
보편의 기준 없이 개입은 단지 편 가르기나 선동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보편과 특수의 균형을 다시 묻는 일이다.
참여의 방식
사르트르는 지식인이 서재에 머물지 말고 거리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외침은 지금도 강렬하게 들린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조금 다르게 질문한다.
지식인의 역할이 반드시 거리의 행진에만 있는가? 느린 분석과 차분한 성찰 역시 일종의 참여일 수 있지 않을까? AI가 논문을 요약하고, 알고리즘이 여론을 선별하는 시대, 지식인의 임무는 더 느리고 더 인간적인 판단을 지키는 일일지 모른다.
사르트르의 실천
사르트르는 말과 동시에 행동으로 스스로를 증명했다. 레지스탕스 참여, 알제리 독립 지지, 노벨상 거부 등 그의 행적은 그 자체로 선언이었다. 그러나 그의 실천 역시 완전하지는 않았다. 때로 정치적 모호함, 때로 추상적 수사로 논란을 낳았다. 지식인의 실천은 언제나 불완전하며, 어쩌면 바로 그 불완전성 속에서만 의미를 얻는다.
오늘의 지식인
오늘날의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개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근거로 발언할 것인가”이다. SNS의 무한한 목소리 속에서 지식인의 과제는 오히려 차분히 구별하는 것이다.
진실과 허위를, 성급한 주장과 검증된 분석을 가르는 느린 작업. 그 느림이야말로 지금의 지식인이 맡아야 할 책임일지도 모른다. 지식인은 더 이상 ‘소리를 높이는 자’가 아니라, ‘소음을 가르는 자’로 남아야 한다.
열린 결론
사르트르는 지식인에게 참여와 개입을 명령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되묻는다. 개입은 언제나 옳은가? 특수성만으로 보편을 포기할 수 있는가? 모두가 발언하는 시대, 지식인의 목소리는 어떤 힘을 지니는가?
지식인은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그 존재 방식은 사르트르의 시대와는 다르다. 속도보다 방향을, 효율보다 판단을 지키려는 느린 이들, 그들이 바로 오늘의 지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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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을 위한 변명, 장 폴 사르트르, 박정태 번역, 이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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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사르트르, 박정태 번역, 이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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