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iel Dennett

우리는 밈의 설계자인가?

by modern promenader

대니얼 데닛에 대하여

대니얼 데닛(Daniel C. Dennett, 1942–2024)은 미국의 철학자이자 인지과학자로, 마음과 의식을 진화와 정보처리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사상가다. 그는 의식을 하나의 중심 관찰자가 아닌, 뇌 속에서 동시에 생성되고 경쟁하는 정보의 흐름으로 보려는 ‘다중 초안 이론’을 제시했다. 또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에서는 인간 정신의 진화를 유전자만이 아니라 언어·기호·문화적 단위인 ‘밈(meme)’의 누적적 설계 과정으로 설명했다.

데닛은 신비를 제거한 철학자가 아니라, 생각이 어떤 경로로 형성되는지를 면밀히 추적한 철학자였다. 현대산책자는 그의 사유를 인간 이해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보며, ‘생각의 구조를 다시 묻는 철학’이라는 문제의식을 깊이 빌려왔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멜로디가 자동 재생된 적 있는가?

어느 순간 친구들 모두가 똑같은 말투를 쓰고 있던 적은? 우리는 흔히 “생각은 내가 한다”고 믿지만, 오늘 소개할 선배 산책자 대니얼 데닛은 되묻는다.

“그 생각, 정말 당신이 고른 것인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노래, 문득 받아들이게 된 신념, 사회를 움직이는 구호는 사실 뇌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밈(meme)의 작동일 수 있다. 밈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다시 마주하는 일이다.

밈 세계를 읽는 렌즈

밈은 도킨스가 제안했지만 과학적 단위로 확정된 적은 없다. 데닛도 이를 인정하며, “문화와 마음을 하나의 진화적 틀에서 이해하게 해주는 개념 도구”로 본다.

즉 데닛의 밈 개념은 실제로 존재하는 조각이나 입자가 아니라, 어떤 생각은 왜 퍼지고 어떤 생각은 왜 사라지는가를 설명하게 해주는 하나의 시선이다. 밈을 렌즈처럼 끼면, 생각의 움직임과 문화의 확산이 새로운 패턴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인간은 어떻게 생각을 설계하는 존재가 되었는가?

데닛은 마음을 초월적 실체로 보지 않는다. 그는 생명체를 네 단계로 구분한다:

다윈적 생명체 → 스키너적 생명체 → 포퍼적 생명체 → 그레고리적 생명체

인간만이 해당하는 ‘그레고리 단계’는 곧 ‘생각 도구를 만들고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존재’를 뜻한다. 이 관점에서 밈은 인간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의 사고를 확장하고 조직하기 위해 활용하는 문화적 설계 체계의 한 축이다. 그렇다면, 이 설계의 재료가 되는 밈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퍼지고 살아남을까?

밈은 이렇게 퍼지고 살아남는다

데닛은 밈을 뇌 속의 물리적 실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확산을 설명하기 위한 가설적 모델로 바라본다. 쉽게 반복되고, 기억되기 좋고, 말하기 편하고, 사회적 보상을 주는 아이디어일수록 더 멀리 퍼지고 더 오래 남는다.

밈은 생명체처럼 복제,변형,경쟁을 거치며 ‘살아남을 확률’을 만든다. 우리가 “왜 저 말이 저렇게 퍼졌지?”라고 느끼는 순간, 밈의 진화를 보고 있는 것이다.

모방을 넘어: 인간만의 ‘누적적 설계 능력’

동물도 모방하지만, 인간만은 모방한 것을 개선하며 누적하는 능력을 갖는다. 이 작은 차이가 시간이 쌓이면, 흰개미의 집과 인간의 건축물, 단순한 리듬과 바흐의 음악 같은 차원이 생겨난다.

데닛은 이를 누적적 설계라 부른다. 다만 이 능력은 밈만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뇌 구조, 사회적 학습, 기술적 전승, 언어적 문화가 함께 엮인 복합적 현상이다. 밈은 그 가운데 하나의 기여 지점이다.

 

언어는 밈의 가속장치다

언어는 밈을 초고속으로 확산시키는 기술이다. 언어는 생각을 잘게 나누고, 정확히 복제하고, 조합하고, 순서를 바꾸며, 밈에게 거의 무한한 이동 경로를 제공한다.

언어가 등장한 뒤, 인간의 문화는 마치 걸어다니던 아이디어가 갑자기 자동차를 얻은 것처럼 폭발적으로 진화했다. 언어는 밈이 문명을 만들 수 있게 한 가속 장치다.

 

잠깐, 정말 모든 것이 밈만으로 설명될까?

여기까지 읽으면 밈이 인간 정신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데닛의 모델에는 중요한 한계가 있다. 데닛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뇌가 단순화해 보여주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라고 설명하지만, 이를 두고 많은 철학자들은 “경험 자체의 풍부함, 즉 감각질(qualia)을 지나치게 축소한다”고 비판한다.

즉, 밈은 우리의 ‘생각 구조’를 설명해주지만, ‘경험의 깊이’를 온전히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밈이 우리 내부를 설명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면, 문화 전체라는 외부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밈의 또 다른 한계, 문화는 복제가 아니라 해석과 변형이다

밈이 우리의 내부 경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외부 세계인 ‘문화’에서도 완전한 해석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문화진화 연구자들은 “밈은 단위가 모호하고, 문화는 단순 복제가 아니라 언제나 해석·재구성·변형을 동반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언어, 제도, 기술, 집단 학습 같은 요소들은 밈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즉, 밈은 인간 마음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데는 유효하지만, 문화 전체를 설명하는 ‘만능 이론’은 아니다. 밈은 마음·사회·언어가 얽힌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유용한 렌즈일 뿐이다.

 

마치며, 우리는 밈의 산물인가, 밈의 설계자인가?

결국 핵심은 밈이 실제로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지금 받아들이는 생각이 어떤 경로로 형성되었으며,  그것을 충분히 검토했는가”이다.

데닛은 인간과 밈의 관계를 ‘지배’나 ‘종속’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공진화로 본다. 우리는 밈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밈을 선택하고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마지막에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지금 떠오른 이 생각을 충분히 비판적으로 검토했는가?” 데닛의 핵심은 진리를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배경을 의심하고 들여다보는 능력을 회복하는 데 있다.

  •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 신광복 번역, 바다출판사
  • 다윈의 위험한 생각, 신광복 번역, 바다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