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x Karp

실리콘밸리는 무너졌다

by PROMETHEUS

알렉스 카프(Alex Karp)

팔란티어(Palantir)의 공동창업자이자 CEO로, 기술·안보·거버넌스 영역에서 독자적 관점을 확립해온 인물이다. 스탠퍼드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독일에서 하버마스의 제자 그룹과 함께 사회철학을 공부했으나, 기술과 제도를 보다 현실적이고 실천 중심으로 다루는 방향을 택하면서 하버마스적 이상주의와 결별했다.

2003년 이후 팔란티어를 통해 국가안보·공공안전·산업운영 등 공공 인프라의 디지털 재구성에 집중해왔으며, 기술을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제도가 다시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구조적 힘으로 이해한다. 최근 저서 『The Technological Republic』에서 기술과 국가, 시민 자유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새로운 정치철학을 제시하며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실리콘밸리 이후의 세계

실리콘밸리는 더 이상 미래의 중심이 아니다. 혁신의 언어는 광고·중독·속도 경쟁에 점령되었고, 기술은 공공선에서 멀어졌다. 이는 단순한 산업의 실패가 아니라 기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기준이 사라진 문명적 공백이다. 기술은 더 빨라졌지만 더 얕아졌고, 더 넓어졌지만 더 비어 있다. 이 공백은 새로운 시대가 무엇을 미래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 묻고 있다.

 

알렉스 카프의 등장

이 지점에서 알렉스 카프가 등장한다. 팔란티어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그는 기술을 시장의 상품으로 보지 않는다. 카프에게 기술은 사회·제도·국가의 설계 방식 전체를 다시 짜는 정치적 행위이며,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그 사회가 어떤 원리를 기반으로 조직되는지 드러내는 철학적 고백이다. 그는 지금의 위기를 기술 부족이 아니라 신념 부족, 가치 판단의 회피, 제도의 무기력에서 찾는다.

 

팔란티어: 국가 기능을 재조직하는 거버넌스 인프라

팔란티어는 ‘테크 기업’이라기보다 20년 동안 정부·군·공공기관의 핵심 기능을 데이터 기반으로 재조직해온 거버넌스 인프라 기업이다. 국방 의사결정, 공공안보, 산업 운영, 공급망, 재난 대응 등 국가의 심장부가 팔란티어의 기술 위에서 작동한다. 그러나 카프는 기술이 권력을 강화하는 장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팔란티어의 모든 설계 원칙은 ‘시민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구조’에 맞춰져 있다.

 

비상품화된 기술: 팔란티어의 독특한 방식

팔란티어의 기술은 상품이 아니라 해석과 재구성에 가깝다. 엔지니어는 현장으로 들어가 업무의 논리를 해부하고, 조직 고유의 존재 구조(ontology)를 소프트웨어로 옮긴다. 즉, 기술이 조직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현실을 기술이 흡수하는 방식이다. 이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구조가 팔란티어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기술이 아니라 ‘현장의 이해’가 시스템의 중심을 결정한다.

LLM은 원자재일 뿐이다

카프는 AI특히 LLM에 대해 “가공되지 않은 원자재”라고 말한다. 모델 자체는 가치가 없으며, 실제 혁신은 AI가 조직의 문법, 판단 구조, 업무 흐름 전체에 통합될 때 발생한다. 그는 “AI는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결정을 더 멀리 확장시키는 장치”라고 말하며, 실리콘밸리가 주장하는 자동화 중심의 미래와 반대되는 입장을 취한다.

 

서구 제도의 붕괴: 왜 기술이 필요해졌는가

카프는 오늘의 서구를 ‘신념을 잃은 문명’이라고 진단한다. 교육기관은 교육하지 않고, 국가는 국경을 유지하지 못하며, 제도는 기능을 잃고, 지성계는 성과와 탁월함을 부정한다. 그는 이 상태를 ‘새로운 이교도 종교’라 부르며, 책임 없는 평등주의와 기준 없는 정의가 제도를 붕괴시키고 있다고 본다. 바로 이런 조건 속에서 기술은 선택이 아닌 필연적 역할을 맡게 된다. 제도가 기능을 잃을 때 기술이 그 기능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되돌릴 수 없는 전환점

카프는 지금의 위기를 과거처럼 자연스럽게 복원되는 문제로 보지 않는다. AI는 되돌릴 수 없는 전환점이며, 기존 제도는 자동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그는 “입력 대비 출력(Output)”이라는 냉정한 기준을 제시하며,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 체계는 대체되거나 소멸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기술을 중심에 두자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복원되지 않는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라는 요구다.

 

기술공화국: 새로운 질서의 설계도

카프는 기술을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운영체제(OS)로 본다. 팔란티어는 이미 국방·공공안보·산업 운용·위기 대응의 구조를 디지털로 재설계하며 하나의 ‘기술공화국’을 실험하고 있다. 그는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기계가 아니라 제도가 잃어버린 기능을 되돌리는 장치”라고 말하며 기술을 민주주의의 새로운 기반으로 보려 한다.

 

마치며: 기술공화국의 밖을 상상할 수 있는가?

카프는 기술·정치·지성을 다시 묶으려는 이 시대의 가장 선명한 설계자처럼 보이며, 그의 기술공화국은 붕괴된 제도를 복원하려는 새로운 정치철학처럼 읽힌다.

그러나 이것이 미래의 전부일까? 기술이 국가의 중심이 되는 질서가 정말 우리가 원하는 모습일까? 그의 비전은 강력하고 설득력이 있지만, 그렇기에 더 중요한 질문이 떠오른다. 기술공화국 바깥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기술 너머의 원리로 사회를 다시 세울 다른 상상력은 여전히 가능한가? 바로 이 질문에서, 실리콘밸리 이후의 진짜 논의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