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ter Benjamin
도파민 중독 시대, 사라진 이야기 기술
by modern promenader
발터 벤야민에 대하여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학비평가로, 근대성 속에서 인간의 경험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탐구한 사상가다. 그는 기술복제 시대에 예술의 ‘아우라’가 소멸한다고 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과 감각이 대중화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또한 ‘플라뇌르(Flâneur)’ 개념을 통해 도시 속 방랑자를 근대적 주체의 상징으로 제시했고, 역사를 진보의 직선이 아닌 파편적 기억의 해방적 가능성으로 바라보았다. 시적 언어와 단편적 사유로 철학과 문학의 경계를 허문 그는, 오늘날에도 예술·철학·미디어이론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된다. 최근 국내 번역본으로는 《이야기꾼 에세이》가 있다.
매일 수많은 ‘이야기’가 흘러간다. 플랫폼마다 ‘스토리’가 넘치지만, 정작 우리는 이야기하는 법을 잃어가고 있다. 감정은 편집되고, 진심은 효율에 맞게 잘려나간다. 알고리즘의 손끝에서 이야기는 점점 납작해진다. 이야기의 기술이 사라진 시대,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쩌다 우리는 이야기의 기술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이야기꾼의 시대, 공동체의 언어
이야기꾼의 기원은 농부와 선원이다. 선원은 먼 바다의 이야기를 물고 오고, 농부는 고향의 전설을 전한다. 위대한 이야기꾼들 또한 결국 이 무명의 이야기꾼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기술과 매체의 팽창, 인플레이션과 정치적 격변 속에서 공동체의 의미가 사라지자, 그들의 자리도 함께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바다를 건너 이야기를 전하던 선원도, 땅을 일구며 전설을 품던 농부도, 그리고 그들과 같은 위대한 이야기꾼도 없다.
소설의 시대, 고립의 언어
이야기꾼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형식이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소설’이었다. 이야기가 공동체의 언어였다면, 소설은 고립된 개인의 고백이었다. 이야기꾼의 지혜는 사라지고, 작가는 홀로 쓰며 독자 또한 혼자 읽는다. 그렇게 공동의 기억은 내면의 독백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산업화의 속도는 그 고백마저 오래 머물게 두지 않았다.
정보의 시대, 언어의 전환
소설은 더 이상 이야기의 대체물이 아니라, 정보 전달의 예비 단계가 되었다. 내면의 서사는 점점 데이터의 언어로 바뀌었다. 그러나 벤야민은 이를 단순한 쇠락이 아니라,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필연적 전환으로 보았다. 이야기는 수공업의 리듬에서 태어났고, 소설은 인쇄 자본의 산물로 성장했으며, 정보는 가속된 산업의 산출물로 등장했다. 이렇게 언어의 형식은 언제나 시대의 생산양식과 함께 변해왔다. 그 결과, 이야기는 더 이상 경험의 전달이 아니라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
소비되는 이야기, 씁씁한 역설
이제 이야기는 형식만이 남았다. 더 이상 삶의 흔적을 품지 못하고, 이미지처럼 소비되는 대상이 되었다. 한때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이 머물던 자리에, 이제는 즉각 재생되고 쉽게 잊혀지는 콘텐츠의 껍질만이 남았다. 이야기는 여전히 넘쳐나지만, 그 안에는 더 이상 삶의 무게도, 시간의 깊이도 없다. 이야기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 이야기의 형식만이 도처에 살아 있다. 바로 그 표면적 생존이야말로 벤야민이 본, 가장 씁쓸한 역설이다.
새로운 야만의 가능성
그러나 벤야민은 이 침묵 속에서도 다시 말하기의 가능성을 본다. 그가 제안한 해답은 ‘야만’의 재정의였다. 그는 야만을 파괴가 아니라 모든 전통이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짓는 창조의 상태로 보았다. 그는 이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자들”이라 불렀다 아인슈타인, 파울 클레, 심지어 캐릭터인 미키 마우스까지. 이들은 문명의 잔해 위에서 새로운 언어와 감각을 발명한 현대의 야만들이었다. 어쩌면 불타버린 서사의 폐허 위에서, 다시 이야기꾼의 시대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마치며: 이야기 이후의 세계
벤야민이 경고한 ‘정보의 시대’는 이제 데이터의 문명이 되었다. 모두가 발언하지만, 그 말에는 서사가 없다. 모든 것이 기록되지만, 그 안엔 기억이 없다. 이야기는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제는 형식만이 남은 언어가 되었다. 너무 빠른 시대, 너무 얕은 언어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형식뿐인 껍질 속에서 지혜를 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해답은 단순하다. 다시 읽고, 천천히 수행하는 일. 정보를 넘어 경험을 회복하는 느림의 기술, 그 안에서만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벤야민이 말한 ‘새로운 야만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발터 벤야민 『이야기꾼 에세이』
이야기가 사라진 시대, 벤야민은 잃어버린 ‘이야기의 기술’을 통해 언어와 기억의 운명을 되묻는다. 이야기의 시대는 끝났지만, 그 형식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그것은 공허한 잔해이자, 동시에 다시 말하기의 출발점이다.
이 책은 <현대문학>의 인문·문학 에세이 시리즈 ‘무우(無宇)’ 중 한 권으로, ‘무(無)’의 여백 속에서 ‘우(宇)’, 하나의 우주가 생성되는 순간을 기록하며 인간과 세계, 예술과 철학의 경계를 탐색한다. 벤야민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면, 그가 남긴 이 질문 위에서 천천히 사유해보자. “어떻게 우리는,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