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025 NOBEL PRIZE

노벨경제학상이 그리는 문명의 곡선

by modern promenader

노벨경제학상이란?

노벨경제학상(Nobel Memorial Prize in Economic Sciences)은 스웨덴 중앙은행이 1968년, 노벨의 정신을 기려 새롭게 제정한 상이다. 경제학 분야에서 인류의 복지와 성장, 사회 구조의 개선에 기여한 학자들에게 수여된다. 이 상은 단순히 경제 이론을 넘어, 제도·정책·기술·지식의 진보가 인류 문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명한다. 수상자들의 연구는 현대 사회가 어떻게 번영을 설계하고, 위기를 넘어서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문명 지도’라 할 수 있다.

“좁은 회랑에서 창조적 파괴로” — 불안정 속에서 문명의 윤리를 다시 묻다

“문명은 다시 ‘근본’을 묻고 있다.” 두 해 연속, 노벨경제학상은 인류 문명의 방향을 되묻는 질문을 던졌다. 2024년은 제도가 번영의 조건을, 2025년은 혁신이 성장을 지속시키는 방식을 탐구했다. 정치와 경제, 제도와 기술이라는 서로 다른 축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하나의 주제로 수렴된다. 문명은 완전한 안정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 자신을 유지하는 질서, 즉 ‘조율된 불안정’을 배우고 있다.


2024 노벨경제학상 — 권력과 제도의 경제학

2024년 노벨경제학상은 대런 애쓰모글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로빈슨에게 돌아갔다. 그들은 제도가 어떻게 형성되고, 왜 어떤 국가는 포용적(inclusive) 구조를 통해 번영하는 반면, 다른 국가는 착취적(extractive) 구조로 쇠퇴하는지를 분석했다. 『Why Nations Fail』은 이 연구의 기초를 놓았고, 『The Narrow Corridor』에서는 자유가 유지되는 조건을, 『Power and Progress』에서는 기술이 권력 구조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탐구했다.

그들의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국가의 강제력과 시민의 자율성 사이의 균형이야말로 자유의 토대라는 것이다. 자유는 구조가 아니라 긴장이다. 애쓰모글루·로빈슨·존슨이 보여준 자유는 완성된 제도의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유지되어야 하는 역동적 긴장이다. 국가가 너무 강하면 폭정이, 너무 약하면 무정부가 온다. 자유는 그 좁은 회랑(corridor) 위에서만 호흡한다. 오늘날 기술이 인간의 속도를 추월하는 시대에, 그 회랑의 폭은 다시 좁아지고 있다. AI와 자동화의 시대에 자유란 더 이상 헌법의 조항이 아니다. 속도에 개입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 그것이 새로운 자유의 형태다.


2025 노벨경제학상 — 성장의 새로운 언어

2025년 노벨경제학상은 조엘 모키어, 필립 아기옹, 피터 하윗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신기술을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 연구를 통해 혁신이 경제의 내적 동력임을 수학적·역사적으로 규명했다. 아기옹과 하윗은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모델화하여, 혁신이 불균형과 갈등을 낳지만 그 갈등이 건설적으로 관리될 때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모키어는 과학적 설명과 개방적 문화가 혁신이 축적될 수 있는 토대임을 밝혔다.

“변화를 허용하는 사회가 성장한다.”

조엘 모키어. 모키어가 말한 과학적 개방성과 아기옹·하윗이 제시한 창조적 파괴의 역동성은 결국 같은 진동 위에 있다. 세 사람의 연구는 경제학의 경계를 넘어 문명이 변화와 불안을 어떻게 조율하는가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다. 성장의 본질은 안정이 아니라 불균형의 순환 속에 있다. 파괴는 새로운 질서를 낳고, 그 질서가 다시 파괴될 때 문명은 정체하지 않는다. 질서와 혼란, 균형과 붕괴의 왕복 운동 속에서 문명은 살아 있다. 파괴와 질서의 조율이야말로 진보의 본질이며, 그 불안정이 문명을 앞으로 밀어올린다.


세계의 현재 — 조율되지 못한 속도

오늘의 세계는 데이터와 자본, 플랫폼이 집중된 시대다. 기술은 혁신을 가속하지만 혜택은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새로운 리바이어던이 형성되고, AI의 편의가 인간의 사유를 대신하려 한다. 회랑은 다시 좁아지고, 파괴는 거칠어진다. 불안정은 문명의 엔진이지만, 그 리듬이 깨지면 곧 붕괴로 이어진다.


인간의 개입 — 기술 이후의 윤리

애쓰모글루와 존슨이 말한 시민의 개입, 아기옹이 강조한 기업가적 상상력, 모키어가 제시한 개방적 문화는 결국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기술은 체계를 설계할 수 있지만, 그 체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다. AI 시대일수록 느림과 판단, 그리고 개입의 윤리가 필요하다. 문명은 인간이 다시 개입하는 만큼 품격을 회복한다.


새로운 문명 곡선

‘좁은 회랑’이 정치적 자유의 구조를, ‘창조적 파괴’가 경제적 성장의 리듬을 그린다면, 두 연구가 함께 제시한 것은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담은 곡선이다. 그 곡선은 직선적 진보가 아니라 반복과 회복의 순환이다. 문명은 질서와 혼란, 파괴와 복원의 교차 속에서만 살아 움직인다. 인류는 완성된 안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긴장 속에서 존재한다.


마치며 — 불안정이 인간의 유일한 길이다

2024년의 연구는 자유를 지키는 용기를, 2025년의 연구는 파괴 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힘을 가르쳤다. 문명은 완성되지 않는다. 다만, 무너질 때마다 다시 세우는 인간의 손길이 있을 뿐이다. 좁은 회랑 위에서 창조적 파괴를 감행하라. 그 불안한 걸음이야말로 21세기의 윤리이자, 인간이 여전히 주체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Daron Acemoglu & James A. Robinson, Why Nations Fail (2012)
  • Daron Acemoglu & James A. Robinson, The Narrow Corridor (2019)
  • Daron Acemoglu & Simon Johnson, Power and Progress (2023)
  • Philippe Aghion & Peter Howitt, A Model of Growth through Creative Destruction (1992)
  • Philippe Aghion, Céline Antonin & Simon Bunel, The Power of Creative Destruction (2021)
  • Joel Mokyr, The Gifts of Athena (2002)
  • Joel Mokyr, A Culture of Growth (2016)